본문 바로가기

그래픽/프리랜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거야

반응형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고민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세상을 만족하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물론 무슨 일이든 일이 되면 마냥 편안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스트레스를 줄이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답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나는 최근까지도 작곡으로 먹고살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엄청나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말해 뭐 하랴. 어떤 세부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현저히 좁아진다. 전공이 음악이라면 교육이나 레슨 등의 분야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이 또한 말처럼 쉬운 건 아니겠지만. 더욱이 전공이 음악이 아니라면? 

 

처음엔 인하우스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를 목표로 삼았었다. 수개월간 이력서를 내고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했었다. 운이 좋게도 몇 군데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결과는 모두 최종 탈락이었다.

 

음악 관련 전공자는 많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공자를 선택한다면 전공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 여기서 게임이 끝났다고 느꼈다. 회사에서 사람을 고용을 하려면 불확실한 비전공자보다는 전공자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인사담당자는 아니었지만 예전 회사에서 사람을 고용하려고 1차적으로 이력서를 간추린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의 비전공자를 거르고 있었다. 왜? 전공자도 많으니까.

 

나는 빠른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지만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보통 인하우스 사운드 디자이너는 사운드 디자인 일만 하지는 않는다. 해당 프로젝트의 음원 데이터 관리, 외주 관리가 사운드 디자인 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된 업무다. 작은 회사에서는 남는 시간에 잡다한 업무를 추가적으로 분배받을 수 있다. 또한, 라이브 프로젝트 특성상 야근이나 특근은 잦은 편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데이터 관리보다는 작곡 업무에 더 집중하고 싶다면 인하우스 보다는 외주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가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직군 중 하나다.

 

세월아, 네월아 부르며 사운드 디자이너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리지만 시간은 계속 지나간다.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시 공허한 순간에 던져졌다. 수년간 노력해 온 일을 하루아침에 단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더 이끌고 가봤자 이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음악 장비를 하나씩 처분해 나갔다. 어찌어찌 취미로 사용해 온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한줄기 빛이 되는 것 같았다. 몇 개월 안되었지만 나는 인하우스 마케팅 그래픽 디자이너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디자인 일은 너무 재밌었다. 마케팅 업무만 제외하면.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부분, 피하고 싶은 업무와 반대로 업무 중 뿌듯했던 순간, 선호하는 업무 방식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 보니 업무 중 가장 힘든 부분은 어이없게도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때로는 점심을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점심시간 터치가 없는 환경에서 일을 할 때가 가장 편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쉬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타입이기에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방 피곤해졌다.

 

가장 기피했던 업무는 전화 업무였다. 전화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때 업무 긴장도가 높아졌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친구들과 전화통화보다는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업무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반대로 내가 편안함을 느낄 때는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생각하며 원하는 것을 하나둘씩 채워가며 만들어 나갈 때였다.

 

정리를 해보니 나는 팀워크를 발휘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일을 할 때 편안하고 즐거웠다. 회사 생활에는 비교적 적합하지 않은 에너지의 소유자다. 이거 어떡하지?

 

생존에 정말 불리한 타입 아니었던가. 혼자 연구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일이란 것은 필수 불가결하게 남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이거 정말 어떡하지?

 

패닉이 왔다. 나는 여태 무엇을 하며 살아온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순식간에 막막해졌다. 물론 내 성향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스스로 꺼내어 인정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일까? 고민이 많아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 상황이 거진 한 달이 되어간다. 심각한 번아웃이 왔다.

스트레스로 살은 점점 찌고 챙겨 먹던 약도 관리를 하지 못했다. 지병이 악화되어 몸에 부종이 쌓여간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의아했던 것은 우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라고 일어서야 한다고 다짐을 해봐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음 한 켠에서는 무언가 간절했지만 또 한 켠에서는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켠다. 단 하나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혼자 하는 업무가 가장 편하다면 직장을 찾기보다는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약도 챙겨 먹고 검진을 위해 병원도 다녀왔다.

프리랜서. 그래, 좋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실력이 될까? 일은 어디서 가져오지? 진료실 대기 중에도 계속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이 나는 것 같다. 좁은 도시의 방을 벗어나 귀여운 차 한 대가 주차된 한적하고 따뜻한 집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지금은 차도 없고, 집도 없다. 이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내가 원하는 근무 형태를 정리해 보았다.

 

  • 출퇴근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 시간 관리가 용이했으면 좋겠다.
  • 집중력이 보장되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 단순 작업보다는 발전할 수 있는 업무였으면 좋겠다.
  • 팀워크보다는 혼자 리드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것 참, 프리랜서가 딱이잖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