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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나

퇴근하고 뭘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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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매번 같은 고민을 한다

 

아니, 적어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남아있을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는 작곡이 재밌었다. 내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과 돈을 모아 조금씩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장비를 마련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에는 머릿속에 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의 한계를 맛보았고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음악을 만들면서 재미를 추구하는 삶, 그것뿐이었다면 아직도 음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은 아니었다. 철저히 상업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이건 나쁜 것이 아니다. 내 직업과 나의 생계가 일치하길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게는 말이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포기했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이후에는 매우 홀가분했다. 아쉽기도 했지만 나의 묵은 짐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 욕망을 이제는 다 채웠기 때문에 홀가분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UX/UI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일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이렇다.

시작: 🎮게임회사 운영팀(운영팀은 별 걸 다 한다. 이미지도 만들고 이벤트도 하고 유저 관리도 하고 택배도 보낸다.)
→ 🫠게임회사 마케팅 팀 디자이너
→ 🫧앱 개발 IT 회사 UX/UI 디자이너

 

간단하쥬?

실제로도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게임회사 사운드 팀에서 사운드 디자이너로 일을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최종 면접에서 통과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직무의 방향을 돌렸다.

 

UX/UI 디자인은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원하는 특유의 포멀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디자인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다. 무엇이든 고객 만족이 어렵다. 하하. 반대로 클라이언트만 만족한다면 일사천리다.

 

힘든 점이 있다면 프로세스가 반복되는 부분,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는 부분에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는 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에 이 직업이 나에게 잘 맞는다. 하지만..., 왜일까?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바로바로...

집에 가서도 디자인하기는 싫다는 것

흑🫠

그렇다. 사실이다.

집에 가서는 컴퓨터 켜기도 싫다. 나는 화려한 그래픽 세계를 너무나도 좋아한(했)다. 멋진 게임 풍경에 빠져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욕망도 있다. 아주 트리키 하고 펑키하고 유니크한 나만의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러나 집에 가서 노트북을 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집에 가서 뭘 하나? 아니 뭘 해야 하나요? 뭘 해야 할까요?

 

나도 모르겠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멍 때리기+이상한 요리 해 먹기+씻기+청소하기+세탁기 돌리기다. 이 이상의 삶을 원하지만 도무지 내 몸뚱이는 전기방석과 전기담요에서 나올 수가 없다.

 

며칠 전에 팀장님이 손에 문어 다발을 들고 내 자리로 오셨다. 팀장님의 어머님께서 뜨신 코바늘 문어 인형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너무나 귀여웠다. 그중에서도 특별나게 귀여운 것 같은 문어 한 마리를 뽑았다.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것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 열심히 뜨개질하고 색상을 고르고 키링을 연결하셨을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거 꽤 귀엽네. 나도 코바늘을 시작해 볼까?

 

쿠팡과 테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코바늘 세트를 검색해 보았다.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결국 결제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게으름이 귀여움을 이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게으름의 끝은 언제나 넷플릭스다. 빔프로젝트를 켜고 넷플릭스를 열어 [판타지] 장르에서 30분가량을 서성인다. 그리고 적당한 것을 재생하고 딴짓을 하면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참고로 딴짓에는 빵 먹기, 그리고 또 빵 먹기 등이 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빵은 슈톨렌과 밤식빵이다. 이 둘 때문에 살이 3kg정도가 쪘을 정도다. 지금 나는 두툼하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왜냐면 당연히 너무나 맛있기 때문이다. 슈톨렌은 무거우면서 부드럽고 가볍다. 달콤한 짙은 안갯속의 구름 같은 맛이다. 환상적인 식감에 단번에 반해버렸다. 물론 내가 먹어본 슈톨렌은 노브랜드에서 파는 것뿐이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밤식빵의 맛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다. 밤조각이 촉촉하고 작고 부드러울수록 더 맛있다. 특히나 밤식빵과 떨어질 수 없는 소보루 친구는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나의 게으름의 가장 강력한 범인은 넷플릭스보다도 이 둘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참지 못하고 저녁으로 밤식빵을 먹었다>

 

빵이 그렇게 좋은가? 그렇다면 베이킹을 해보면 어떨까? 좋다.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븐도 구매했다. 그러나 아직 오픈도 안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 "파티셰를 잡아라{Nailed i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정말 황당하고 웃기는 시리즈다.

 

프로그램은 회차마다 3명의 도전자가 두 번의 베이킹 대결을 한다. 각 주제별로 주어진 완성된 샘플을 주어진 시간 내에 똑같이 만들면 된다. 물론 맛도 평가 대상이다.

 

도전자들의 결과물은 처참했다. 베이킹을 잘하는 도전자는 시리즈 내내 아무도 없었다. 흐린눈으로 봐야 완성 샘플과 조금 비슷한가 싶을 정도다. 그런 엉뚱함이 귀엽고 웃겼다.

 

그걸 보면서 나도 도전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네일딧-! 쇼를 해보는 거야. 그렇게 오븐 구매가 이루어졌으나 나의 귀찮음에 아직 오븐과 인사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가? 일이 너무 고되고 힘이 들어서 집에 오면 지치는 것도 아니오, 무언가 해야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실행이 되지 않는다.

 

출퇴근길이 1시간 10분정도 걸린다. 그땐 보통 오디오북을 듣는다. 내가 선택하는 카테고리는 자기 계발서이다. 열정은 가득한데 매번 실행이 되지 않는 나를 바꾸어보고 싶어서 듣는다. 아침에는 효과가 있다. 그래, 해보는 거야 하고 퇴근하면서는 까맣게 잊거나 내일로 미룬다. 이게 벌써 몇 개월 째다. 나도 이런 내가 지겨울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빔프로젝트를 당근으로 판매했다. 이제 내 거실에 남은 것은 식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트롤리뿐이다. 이제 빵을 먹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것이 없어졌다. 그 덕에 블로그 생각이 나서 블로그에 글을 적고 있다. 노트북 먼지도 닦아 주었다.

 

어떤 오디오북에서 그랬다. 아웃풋이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영화보기, 여행기가, 독서하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영화 보고 느낀 점을 써본다거나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발행을 해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그래야 이 허무하고 공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공을 들여 노력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삶에 공허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하하하. 이제 나도 취미가 다시 생겼다. 그것은 블로깅!

 

글쓰는 관종이 되기 위한 나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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