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내가 병원을 찾은 것은 우울감, 그리고 멍한 증상 때문이었다. 처음엔 뇌파검사, 자율신경계 검사를 받고 상담을 하며 조울증 의심을 받았다. 이후 한 달간 아빌리파이 1mg, 라믹탈 50mg을 처방받고 상담을 계속하며 CAT 검사와 문항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결과는 항목 한 가지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저하로 나왔다. 초큼 충격쓰.
아빌리파이를 4주간 먹은 결과 우울감과 불안감 등의 부정적 감정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멍하고 정신없는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단순 우울증이면 우울감이 개선되면 집중력도 조금 나아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두서없이 정신없고 산만하고 급했다. 내 머릿속은 바쁘고 하루종일 하는 일은 많은데 돌아보면 한 게 없다. 이런 스스로를 자책을 하고 괴로웠는데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콘서타 약을 처방받으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이제라도 나를 돌아볼 새로운 방법 하나를 더 알게 되어서 개운한 느낌이다. 아직 초기이고 한 알 밖에 안 먹었기에 큰 효과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하고 있다. 이 멍한 세상에 먼지를 지우고 깨끗한 시야가 조금이라도 확보되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치위생과를 나와서 부사관학교를 탈퇴하고 게임 음악 작곡을 배웠다가 지금은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그림에 흥미가 생겨서 사이버대학 회화과에 편입 지원한 상태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백수지만 다시 취업하면 퇴근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그리고 또 역시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떨어지면 체면이 서질 않으니 합격하면 후기를 쓰겠다.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었다. 중학교 때 가정 선생님이 나를 용두사미라고 지칭했었다. 그때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맞으니까. 그때 알아채고 약을 먹고 치료를 했었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하지만 난 지금 나름 나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에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겠다.
항상 가만히 있질 못하고 탈색을 했다가 히피펌을 했다가 풀었다가 입술 필러를 넣었다가 히알라제로 녹였다가 이러고 있다. 결과는 돈지랄과 거친 빗자루 머릿결뿐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이벤트는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평탄하고 싶었다. 우아한 백조가 되고 싶은데 그냥 여기저기 하악대는 하이에나로 살아왔던 것 같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가서 이런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것 같다. 타고난 기질이 급하면 그냥 받아들이고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그래. 새로운 변화들을 즐기며 사는 것이 문제가 될까? 빗자루 머릿결은 내가 즐긴 흔적인 것. 꼭 우아한 백조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나의 바람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오늘 오후는 무엇인가 재밌었다. 얼마 전부터 책상에 스탠드 조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쿠팡을 뒤지며 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망설인 이유는 알라딘 사은품으로 받았던 투명한 유리구슬 모양의 예쁜 무드등이 있어서 추가로 스탠드를 구매하는 것은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쉬면서 당근을 켰는데 마침 단돈 5,900원에 미개봉 터치 스탠드를 판매하고 있었다. 바로 입금할게요 날리고 갔더니 원래 사려던 물건이 없다면서 더 좋은 스탠드를 주셨다. 무려 시계도 있고 온도계도 장착된 제품을. 게다가 예쁜 검은색 양말과 사탕까지 챙겨주셨다.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졌다.
오늘 날씨는 매우 더웠다. 하루종일 왔다 갔다 하니 금세 땀에 절여졌다. 근데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모든 것이 시원하고 개운하다.